어릴 적 어머님이 일하시는 곳에 자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일을 하고 계실 땐 주변의 상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주로 가는 곳이 당구장이나 다방이었습니다. 요즘엔 취미생활로 당구장을 가지만 다방은 자취를 감춰서 갈 곳이 없습니다. 잊혀진 다방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다방의 정의
일정한 크기의 실내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차와 커피 등 여러 종류의 음료수를 사서 마실 수 있도록 꾸민 상점입니다.
지금은 대부분 커피숍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커피숍과 다방의 차이점이 원두를 취급하는 것으로 분류한다고 하지만 근본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방의 역사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 다방(茶房) 또는 다실(茶室)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입니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불교 의식과 관련하여 차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차와 과일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국가기관으로 다방을 왕실에 두었다고 합니다. 다방에서는 주로 궁중에서 쓰이는 약을 조제하여 바치거나 궁중의 다례(茶禮)에 해당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다고 합니다. 국가 기관으로 다방은 조선시대에도 유지되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차 문화가 점차 쇠퇴해 가면서 폐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개항 후 외국인들에 의해 커피 문화가 유입되면서 그들이 머물던 호텔에 서양식 ‘커피숍coffee shop’이 생겨났습니다.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孫澤], A. Sontag은 1902년 정동에 문을 연 손탁호텔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커피숍을 두었고, 1914년에 개업한 조선호텔 커피숍은 일제강점기 최고급 커피 판매점으로 유명했습니다. 1923년을 전후해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근대 의미의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명동의 ‘후타미二見’는 다방을 전업으로 하는 최초의 근대 다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인이 운영한 최초의 다방은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李慶孫)이 관훈동에 문을 연 ‘카카듀’입니다. 그 후 ‘멕시코다방’, ‘낙랑파라’, ‘제비’ 등 조선인이 경영한 다방이 조선인 거리 종로 일대를 중심으로 속속 개업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다방 사장들은 주로 화가·음악가·문인 등 예술가였으며, 다방은 예술가들의 사교장이자 낭만 넘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이루어진 급속한 경제 성장은 중소기업인들로 하여금 다방을 비즈니스 공간으로 활용하게 하였습니다. 전화가 많지 않던 시절에 소규모 상공인들은 다방을 사무실 삼아 업무를 보았으며, 그 때문에 주로 대도시의 번화가에 분포해 있던 다방은 관공서와 사무실 주변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영업 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식인 계층 사장이 직접 차를 끓이고 손님을 맞던 것에서 마담, 레지, 카운터, 주방 등 종업원을 두고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기업화 된 운영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홀에서 서빙과 손님 말동무 역할을 하던 레지들은 인근 사무실이나 상점으로 배달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전 문화공간 역할을 수행하던 다방의 형태도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DJ를 두고 클래식음악을 전문으로 틀어 주는 음악 다방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와 인스턴트 커피가 보급되고 1980년대 커피 자판기가 생겨나면서 문을 닫는 다방이 늘어나게 되면서 다방 문화는 점차 변질되어 갔습니다.
1980년대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기차역과 터미널 주변으로 심야 영업을 하는 다방이 생겨났고, 배달 문화가 변질되어 레지들에게 매춘 행위를 시키는 속칭 ‘티켓 다방’ 이 유행처럼 번져 가기도 했습니다. 다방이 범죄의 온상이자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기존 다방의 분위기를 일신한 프랜차이즈 다방과 대학가 중심으로 소규모 ‘카페’ 가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다방’ 이란 이름을 쓰지 않으면서 기존의 다방과 차별화를 시도했고, 깨끗하고 밝은 실내 인테리어에 저렴한 가격으로 대학생 등 젊은 층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외국계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 한국에 분점을 개설하면서 우리나라 다방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세련되고 편안한 매장 분위기와 테이크아웃(take-out)이 가능한 주문 방식에 더하여 대용량의 아메리카노(americano) 커피가 젊은 층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커피숍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와 함께 2010년대 들어와 바리스타(barista) 자격증을 획득한 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커피숍도 거리마다 생겨났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다방 문화는 고전 형태 다방은 쇠퇴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 전문적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로 변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참고문헌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강준만·오두진, 인물과 사상, 2009),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장유정, 살림, 2008), 다방기행문(유성용, 책읽는수요일, 2011),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김윤식, 한겨례출판, 2012), Coffee-양탕국에서 커피믹스까지(인천시립박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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