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과학이 발달하여 예전처럼 큰 가뭄이 들어도 농사를 짓는데 어느 정도의 완충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몇 달씩 비가 안 오면 지금도 매우 힘들 것입니다. 이럴 때 예전에는 구황작물의 농사를 적극 권장하였다고 합니다. 힘들고 배고플 때 우리에게 힘이 되어준 구황작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황작물(救荒作物) 이란?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여 생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주곡 대신 소비할 수 있는 농작물을 말합니다.
구황작물은 가뭄이나 장마 등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고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 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작물을 말합니다. 조, 피, 기장, 메밀, 감자, 고구마, 돼지감자, 콩, 옥수수, 순무, 토란, 칡,칡 등이 이에 속합니다.
구황작물의 자세한 설명
흉년으로 인해 굶주리는 형태를 기근(飢饉)이라고 하는데 기근 상황도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아爾雅』에서는 곡식이 익지 않는 것을 기(饑), 채소가 자라지 않는 것을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것을 황(荒)이라 하였습니다. 『춘추春秋』 「곡량전穀梁傳」 저자 곡량자(穀梁子)는 한 가지 곡식이 여물지 않은 것을 겸(嗛), 두 가지 곡식이 여물지 않은 것을 기(饑), 세 가지 곡식이 여물지 않은 것을 근(饉), 네 가지 곡식이 여물지 않은 것을 강(康), 다섯 가지 곡식이 여물지 않은 것을 대침(大侵)으로 불렀습니다.
정약용은 양(梁)·도(稻)·숙(菽) 세 가지가 익지 않는 것을 근(饉), 마(麻)·서(黍)·직(稷)·맥(麥) 네 가지가 익지 않는 것을 침(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련의 정책을 나타내는 말로 구황(救荒), 구제(救濟), 구휼(救恤), 구빈(救貧), 진제(賑濟), 진휼(賑恤), 진구(賑救), 주진(賙賑), 섬휼(贍卹), 황정(荒政)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됩니다. 이 중 진휼은 종자와 식량을 무상으로 지급한 진급(賑給)과 유상으로 지급한 대급(貸給)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구황은 흉년 등으로 말미암아 굶주림에 빠진 빈민을 구제하는 일입니다.
구황은 굶주림을 일시 해결하는 방법, 구황식품은 부황을 해결하는 음식이지만, 시대·계절·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구황식품의 주재료가 되는 구황작물 또는 비황작물(備荒作物)은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해서 생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주곡 대신 소비할 수 있는 농작물입니다. 모든 조건을 다 떠나서 다양한 작물 중 수확하기까지의 재배 기간이 상당히 짧은 것이 우선입니다. 보통 60일 내외, 길어도 90일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보통 파종한 작물의 상태가 좋지 않아 대체용으로 심을 경우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생육 기간이 짧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조, 피, 기장, 메밀, 콩, 순무 등이 구황작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콩은 가뭄만 아니라면 재배에 최소 75일 정도가 걸립니다. 또 17세기 이후 전래된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도 훌륭한 구황작물입니다.
하지만 옥수수처럼 조선 후기에 전래된 신작물은 새롭게 작부 체계에 편입되기 전에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이것은 신작물이 도입되어 그 사회에서 받아들여 지기까지 문화 측면의 용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세계 식량작물인 옥수수를 보면 서유구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본리지(本利志)에서 “일명 옥고량(玉高粱)이라고도 하며 수수의 종류입니다. 청백 홍의 세 품종이 있고 양식으로 보태며 밀가루에 맞먹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숭상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19세기까지 아직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태를 기술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옥수수 품종도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다섯 종류를 이야기하였는데 『임원경제지』에서는 단지 세 종류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농서에서 재배 적지와 파종 간격만 간략하게 언급한 것은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구마도 일찍부터 생산량이 많고 맛이 좋으며 땅 속에 있기 때문에 재해에도 유리하여 흉년에 쌀을 대신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고 여겨져 재배가 적극 권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고구마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어 고구마 관련 서적이 간행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조 때 호남지방의 기근을 살펴보기 위하여 파견된 서영보의 보고에 의하면 도입된 지 30여 년이 지나지 않아서 고구마는 종자를 구할 수 없는 상당히 희귀한 작물이 되었을 정도로 재배가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구황작물도 농사를 망친 논에 메밀, 팥, 콩, 기장, 조 등 밭작물을 대신 심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세금도 면제해 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메밀은 “결실 때까지의 전후 기간이 충분히 서리를 면할 수 있는 것으로서 국수도 만들 수 있고 조호(雕胡)의 맛과 영양을 당할 만도 하여, 흉년의 기근을 구제하는 공이 서쪽 지방(중국)의 토란이나 남쪽 지방(일본)의 고구마보다 월등히 나은 것은 오직 메밀이다.”라고 정조가 말할 정도였습니다.
구황작물의 특징 및 의의
정약용이 <메밀(교맥蕎麥)>이란 시에서 메밀을 대파하라고 명해서 벼 모를 뽑아 놓았으나 메밀 종자는 구해 주지 않고 오직 대파를 하지 않은 이유로 벌을 주려는 지방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구황을 민간에서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의미로 구황 관련 서적을 간행해서 보급하였습니다. 세종 때는 『구황벽곡방救荒辟穀方』, 명종 때는 『구황촬요救荒撮要』 등에서 구황작물 재배법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에 널리 퍼지지는 못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1639년(인조 17)에 『구황벽온방救荒壁瘟方』이 나왔으며, 1660년(현종 1) 『구황촬요』에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을 합쳐 『신간구황촬요』를 펴내 보급시켰습니다.
특히 고구마 및 감자가 전래되면서 신작물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강필리(姜必履)의 『감저보甘藷譜』, 김장순(金長淳)의 『감저신보甘藷新譜』(1813), 서유구(徐有榘)의 『종저보種藷譜』(1834) 등 고구마 재배법을 소개한 책도 편찬되었습니다. 고구마보다 60년 정도 뒤늦게 전래된 감자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되었습니다. 감자 재배와 관련된 책으로는 조성묵(趙性默)의 『원서방圓薯方』(1832)과 김창한(金昌漢)의 『원저보圓藷譜』(1862)가 있습니다.
참고문헌
약산시문집(茶山詩文集), 목민심서(牧民心書), 본리지(本利志),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일제시기 제천지역 구황음식의 식용양식(김재영, 역사민속학19, 한국역사민속학회, 2004), 조선시대 구황식품의 문헌적 고찰(김성미·이성우,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2-1, 동아시아식생활학회, 1992), 조선후기 구황식품의 활용에 대한 연구(김태완, 서울시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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