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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음식을 찌는데 사용하던 전통 조리 기구 "시루"

by 허브마스터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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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사에 빠져서 열심히 역사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해서 먹었을까? 하나씩 알아보는 게 꽤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엔 그중에 증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드는데 시용하였던 시루에 관한 내용입니다. 

 

증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조리 도구 "시루"
시루(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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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의 정의

 

증기를 이용하여 곡물을 찌는 조리 용구이자 의례 용구입니다.

 

쌀이나 잡곡 등을 가루 내어 떡을 찌는 조리 용구이며, 증기가 곡물에 닿기 쉽도록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신에게 치성을 드릴 때는 떡을 쪄서 시루 째 올리기도 합니다. 이는 시루가 조리 용구이자 의례 용구였음을 보여줍니다.

 

각 가정마다 하나씩은 있는 조리도구가 시루와 원리가 같습니다.

증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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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의 역사

 

우리 민족의 식생활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대부분의 음식물이 농경을 통해 획득되고, 이와 함께 조리 용구도 자연스럽게 개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곡물을 가루 내어 찌는 시루 또한 예외가 아니며, 농경생활과 더불어 시루가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보면 시루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출현합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나진 초도 패총과 기원전 5세기쯤 초기 철기시대 유적으로 알려진 북창군 대평리 유적에서 시루가 출토됐습니다. 청동기시대 시루는 한반도 북부지역에 편중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나 삼국시대 시루는 한반도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지로 북부지역에는 낙랑, 북창 대평리, 시중 노남리 등이 있습니다. 중부지역에는 포천 영송리, 파주 주월리, 가평 마장리 등이 있습니다. 남부지역으로는 완주 반교리, 전주 여의동, 남원 세전리, 군산 남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삼국시대 이후 시루가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시루의 형태

 

시루는 손잡이, 몸체, 바닥, 구멍으로 구성됩니다. 직접 열을 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조리 용구와 결합하여 사용됩니다. 즉 물을 끓일 수 있는 별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시루 솥’ 이라고 합니다.

 

선사시대 시루는 평편한 바닥에 몸체로 올라가다가 발라지며, 입술 주위에서 점차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뻗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높이에 비해 입 지름이 그리 넓지 않고 내부가 깊은 특징을 보입니다. 손잡이는 쇠뿔 모양으로 몸체 윗부분 양쪽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바닥의 구멍은 원형만 취하는 형태, 원형․선형․타원형․삼각형․다각형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형태 등이 있습니다. 바닥의 구멍이 원형인 것은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바닥 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찔러서 뚫은 것으로, 구멍의 배치가 매우 조밀하고 불규칙합니다. 복합형인 것은 바닥 면 가운데에 상대적으로 큰 원형을 두고 그 주위로 선형․타원형 등 구멍을 냈습니다.

 

삼국시대 시루는 선사시대 시루의 외형적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도 하고, 시루의 바닥에서 입술로 이어지는 몸체가 구형이나 원형을 이루고 입술 아래에 짧은 목이 있거나 생략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루는 바닥이 반구형의 뾰족한 형태입니다. 바닥 면 중앙에 서너 개의 직사각형 구멍과 함께 그 주위로 직사각형 구멍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손잡이는 반고리형입니다. 몸체와 손잡이 사이에 손을 넣어 잡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시루는 입 지름이 넓은 동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손잡이는 삼국시대의 시루와 같이 반 고리입니다. 바닥의 구멍은 이전 시기의 시루보다 큰 원형이거나 큰 원형을 두고 주변에 삼각형, 직사각형, 다각형 등을 배치한 형태입니다.

 

시루 형태를 살펴보면, 몸체는 원형 또는 구형에서 동이형, 손잡이는 쇠뿔형에서 반고리형, 바닥의 구멍은 미세한 원형이나 복합형에서 상대적으로 큰 원형의 일정한 배치구도로 각각 변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시루의 사용

 

시루는 떡을 찌고 솥은 밥을 짓는 용구입니다. 선사시대에서 잡곡을 가루 내어 시루에 찌는 형태인 떡이 주식이었다면 삼국시대 이후에는 잡곡을 솥에 넣어 익히는 형태인 밥이 주식이었습니다. 주식이 밥으로 정착되면서 의례문화의 발달과 함께 떡은 일상식에서 비일 상식인 별식 또는 의례 음식으로 용도가 변화하였습니다. 시루떡은 오랜 세월 동안 의례 음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신에게 인간의 소망이나 기원을 바라는 고사음식,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제사음식, 세시에 따른 계절음식으로, 잡귀의 접근을 막아주는 벽사 음식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풍속에 '칠석고사' 와 '상달 고사' 가 있습니다. 칠석 고사는 음력 칠월 초이렛날 조상신을 비롯한 집안의 여러 신에게 행하는 의례입니다. 지역에 따라서 칠성제 또는 칠석제라고도 합니다. 충북 괴산지역에서는 집 안에 상을 준비하여 흰 종이를 깔고 백설기 한 시루, 청수 한 그릇, 통 북어 한 마리를 놓고 칠성제를 지냅니다. 충남 공주지역에서는 초엿샛날 저녁에 시루를 마련하여 메, 미역국, 청수를 함께 장독대에 올려 사방에 절을 한 뒤 칠성 소지를 올립니다. 상달 고사는 음력 시월에 행하는 의례입니다. 이때 붉은팥 시루떡을 쪄서 성주를 비롯한 집안의 여러 신에게 올립니다. 이때 이용되는 시루떡은 시루 째로 대문이나 장독대 등에 놓습니다. 이를 ‘치성시루’라고 합니다. 이러한 고사에는 가내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혼례를 올리는 과정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함을 보내는 절차가 있습니다. 이때 신부집에서 의례 음식으로 봉치 떡을 준비합니다. 봉치 떡은 찹쌀가루와 붉은팥을 이용하여 만듭니다. 붉은팥에는 액을 피하고 잡귀의 접근을 막아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때 붉은팥과 같은 의미에서 붉은 오지 시루를 사용합니다. 이것을 '봉치 시루'라고 합니다.

 

무속의 신에게 올리는 제물에도 시루떡이 등장합니다. 경기도 도당굿에 행해지는 굿 절차 가운데 '시루 말' 이 있습니다. 시루 말은 창세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기도의 유일한 무가로서, 시루를 앞에 놓고 굿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무속 굿에 등장하는 신령인 대감 신을 위해 차리는 제물에도 시루가 등장합니다. 이때 대감 신의 몫으로 차리는 대감시루의 떡은 대개 팥 시루떡입니다. 굿에 따라서는 다양한 대감 신이 모셔지며 대감 신의 종류에 따라 별도의 시루를 장만합니다.

 

시루는 매일 상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례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 용구이자 의례 용구입니다. 떡은 주식인 밥과 달리 비일상적인 의례 음식으로서 술과 함께 신에게 올리는 가장 중요한 제물로 인식됩니다. 이런 이유로 굿을 할 때는 떡을 쪄서 시루 째 올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떡을 시루 째 올리는 것은 시루가 신성한 그릇이라는 상징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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