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기술은 차좁쌀 가루를 익반죽 해 만든 오메기떡에 누룩을 섞어 반죽한 후 적당량의 물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제주특별자치도의 전통 민속주입니다. 오메기술은 차좁쌀 반죽으로 도넛과 비슷하게 생긴 구멍 떡을 만들어 뜨거운 물에 익힌 다음, 떡을 으깨어서 누룩을 섞어 만든 술밑을 항아리에 넣고 숙성시켜서 얻는 술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
우리나라의 전통주 가운데 가장 먼저 연상되는 술을 꼽으라면 아마도 막걸리(탁주)와 청주, 소주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 역사 또한 오래되어 옛 문헌에는 막걸리는 ‘탁료(濁醪)’, ‘탁주(濁酒)’라는 이름으로 청주와 더불어 등장합니다.
고려 중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저자 이규보(李奎報)는 자신과 막걸리에 얽힌 사연을 소재로 삼은 ‘백주시(白酒詩)’를 남겼는데, 이 시에서는 탁주와 청주 모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오래전부터 전통주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중국 진(晉)나라의 사서(史書)인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여와 마한 사람들이 파종이나 추수를 마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신에게 올렸던 술과 음식을 음복하며 가무를 즐긴 풍속은 유구한 전통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 고유의 농경문화입니다.
삼국시대 이전에 어떠한 술을 빚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쌀을 비롯한 곡식에 누룩을 넣어 탁주와 청주 같은 술을 빚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통적으로 쌀농사를 지어왔던 우리나라에서는 쌀에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탁주와 청주가 대표적인 술이었습니다. 곡식에 누룩을 넣고 숙성시키는 발효주는 술 가운데 재료도 간단하고 술빚기도 어렵지 않아서 심지어 예전에는 가양주(家釀酒)라 하여 집집마다 술을 빚어 먹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가양주 문화는 근대까지 이어져 오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제정한 주세령(酒稅令)에 의해 술의 자가제조가 전면 금지되면서 수많은 전통주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고려 때 몽골로부터 증류주법이 도입된 이후에는 소줏고리를 이용하여 청주를 증류시킨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가 등장하였습니다.
제주도의 전통주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쌀 대신에 차좁쌀을 이용해 빚는 술이 있으니 바로 오메기술입니다.
오메기술은 차좁쌀 반죽으로 도넛과 비슷하게 생긴 구멍 떡을 만들어 뜨거운 물에 익힌 다음, 떡을 으깨어서 누룩을 섞어 만든 술밑을 항아리에 넣어 20~30일 정도 숙성시켜서 얻습니다.
오메기술은 발효가 끝나면 윗술과 아랫술로 나뉘게 됩니다. 제주에서는 전자를 ‘윗국’, 후자를 ‘밑국’이라 부릅니다. 윗국은 항아리 윗부분의 맑게 뜬 술로 이것이 제례와 손님 접대에 주로 이용하는 청주(淸酒)입니다. 아랫국은 항아리 아랫부분에 걸쭉한 부분으로 이것을 체에 걸러낸 것이 제주말로 ‘막걸리’ 혹은 ‘탁바기’라고 하는 탁주입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청주와 탁주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오메기술’로 통칭한다고 한다.
쌀로 빚은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를 얻듯이, 제주에서도 오메기술을 증류하여 ‘고소리술’이라는 소주를 얻습니다. ‘고소리’는 소주를 증류할 때 쓰는 도구인 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입니다.
제주도는 1273년(원종 14) 삼별초의 패망 이후 1290년까지 원나라가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하고 직할(直轄)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몽고의 문화적인 영향을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메기술을 증류하여 얻은 고소리술은 제주의 민간신앙에서도 중요한 술이었습니다. 1521년(중종 16) 김정(金淨, 1486~1521)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는 제주민들이 “겨울과 여름을 물론하고 소주를 사용한다(冬夏勿論用燒酒)”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때 사용한 소주가 바로 고소리술이었습니다.
소주를 많이 사용한 까닭은 아마도 신당(神堂)이 많았던 제주에서 제주(祭酒)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정도 “명절과 삭망(朔望), 칠칠일(七七日)에 희생을 잡아 제사하는데 음사(淫祠)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300여 개소에 이른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칠칠일’은 매월 7일, 17일, 27일 등 7자가 들어가는 날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명절은 제외하더라도 매달 신당 한곳에서 지내는 제사가 평균 5회 정도이므로 제수로 마련되는 술의 수요 또한 많았을 것입니다.
차좁쌀로 술을 빚은 이유
그렇다면 제주에서는 쌀을 사용하지 않고 하필이면 차좁쌀로 술을 빚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그 이유는 제주에는 쌀이 매우 귀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화산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지형으로 토양의 70%가량이 화산재가 부식된 토양이며, 지층의 두께도 얇은 데다가 돌이 많아서 논밭 농사에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었습니다. 따라서 논농사는 거의 불가능했고 건조하고 거친 토양에서도 경작이 가능한 조, 메밀, 피, 보리가 재배되었습니다. 그나마도 토질이 거친 탓에 곡식의 품질조차 좋지 않았습니다.
1628년(인조 6)부터 1635년까지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이건(李健)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는 “섬의 토지가 모두 모래 성분이어서 밭이 매우 척박하여 콩의 크기는 팥알만 하고, 팥의 크기는 녹두만 하며, 보리도 부실하여 피의 모양만 하다. 논은 원래 없는 까닭에 섬에서 가장 귀한 것이 쌀이다”라고 제주도의 풍토를 기록하였습니다.
척박한 제주의 환경에서 제주민들은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곡식 중 찰기가 가장 높은 차좁쌀을 술 담그기에 좋은 재료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1990년 제주특별자치도(당시 제주도)에서는 오메기술을 지방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하였고, 1995년에는 고소리술을 지방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무렵 제주도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시행하면서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관광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일환으로 국세청과 협의 하에 제주도가 오메기술을 비롯한 제주 전통주의 제조허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 이후로 오매기술은 제주의 명실상부한 전통주이자 특산품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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