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식에서 가장 만들기 힘들면서도 그 맛이 최고인 게 궁중 음식입니다. 임금님도 백성들과 같은 김치를 먹었을까 궁금했는데 정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장김치라는 간장으로 맛을 낸 김치입니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장김치의 정의
무와 배추를 간장에 절인 다음 미나리, 갓 등을 섞어 간장을 탄 물에 꿀이나 설탕을 쳐서 담근 김치입니다.
주재료인 채소를 소금으로 절이고 소금이나 젓국으로 간을 맞추는 일반 김치와 달리 절임과 간을 모두 간장으로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장김치"가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문헌에서는 장저(醬菹), 장침채(醬沈菜)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김치에는 젓갈이나 소금, 고춧가루 등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반 김치가 소금과 채소가 발효되어 익은 맛이라면 간장 국물과 채소가 합해져서 발효된 맛이라 김치 맛이 색다릅니다.
장김치의 역사와 특징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가포육영(家圃六詠)>이란 시에는 “청(菁)을 장에 담그면 여름 3개월 동안 먹기에 매우 마땅하고, 소금에 절이면 겨울 9개월을 능히 견딜 수 있네. 뿌리는 땅 밑에 휘감겨서 약간 통통한데, 서리가 내릴 때 칼로 자르면 가장 먹기 좋은데 그 모양이 배[梨]와 비슷하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청은 무를 가리키며, 무를 장에 담가 만든 여름철 김치는 장김치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색(李穡)은 『목은고(牧隱藁)』에서 “개성 사람 유순이 우엉, 파, 무와 함께 침채장(沈菜醬)을 보내왔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의 침채장 역시 일종의 장김치입니다.
조선 후기 문헌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장짠지라 하여 여름에 어린 오이와 무, 배추를 간장에 절이고 전복과 청각·고추를 켜켜이 넣는다고 하였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월내잡사(月內雜事)에도 무, 배추, 미나리, 생강, 고추로 장김치를 담가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름 장김치에는 오이가 들어가고 겨울 장김치에는 오이가 들어가지 않는 차이만 있을 뿐 19세기 때 장김치는 사시사철 언제나 먹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는 무·배추·배를 간장에 절이고 여기에 마늘, 생강, 갓, 석이, 표고버섯 따위를 채 썰어서 담근다고 하였습니다.
『규합총서』와 『동국세시기』 기록과 달리 1890년대가 되면 고추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20세기 이후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조선간장에 비해 단맛이 강한 일본간장에 양파를 절여서 국물을 낸 장김치가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장김치는 주로 겨울에 담그지만 여름에 먹기도 합니다.
충청남도 논산의 파평 윤 씨에서는 무와 배추를 간장에 절여 담그는 장김치는 가을부터 담가 먹기 시작하여 이듬해 봄까지 재료가 있을 때 항상 담가 먹습니다.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이 온다고 하면 가장 먼저 장김치를 담갔다. 주안상에 반드시 올리는 김치이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들이 떡을 먹을 때도 장김치를 함께 내면 맛의 궁합이 좋았다고 합니다. 종가에서 담근 장김치는 고춧가루가 들어가 나박김치와 유사한 형태의 물김치 류입니다. 장김치는 무와 알배추에 미나리와 풋마늘·밤·배 등을 썰어 넣고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씨간장으로 간을 맞춘 국물을 부어 담근다고 합니다.
따로 숙성기간을 거치지 않아 시원한 맛을 특징으로 합니다. 부재료인 밤, 마늘, 생강 등을 결 대로 곱게 채로 썰어 넣어 시각 효과도 높였습니다. 종가의 주변에는 밤나무가 많아서 장김치의 부재료로 생밤을 꼭 넣었고, 시원한 맛을 위해 배를 소 재료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고추와 고춧가루를 넣는 것도 이 종가 장김치의 특징입니다.
장김치를 가을배추와 무로 담그는 것이 정석이지만 사철 배추와 무를 구할 수 있는 요즈음에는 한여름을 제외하면 특별히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담가 먹습니다. 겨울처럼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익혀 제대로 발효된 김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여름철에 간단하게 채소들을 썰어 넣고 물을 부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장김치입니다.
귀한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장김치는 주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서 발달할 수밖에 없던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장김치는 궁중과 근기(近畿) 지역에 거주하던 관리 계급, 또는 이들과 문화 교류가 가능한 지방의 양반층에서 즐겨 먹던 김치였습니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떡을 안주로 올린 주안상이나 떡국상에 올렸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규합총서(閨閤叢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주영하, 공간, 1994), 통김치 탄생의 역사(박채린, 민속원, 2013), 한국세시풍속(임동권, 서문당, 1977), 한국 종가의 내림 발효음식(세계김치연구소, 쿠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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