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눈도 많이 내리고 길도 매우 지저분합니다. 뉴스를 보면 답답한 얘기만 나오고 흥이 나고 즐거운 소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럴 때 마음 맞는 벗이나 지인들과 맑은 청주 한잔 마시면 좀 풀릴 거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무척 춥다고 하니 다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청주의 정의
앙금 없이 거른 맑은 술입니다.
청주는 사전적 의미로는 맑은술이고, 역사 의미로는 조선시대에 상층 계급에서 즐기던 귀한 발효주이며, 주세법으로는 일본 청주 방식으로 빚는 술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청주를 통해서 선비 문화를 살필 수 있고, 일제강점기의 굴절된 술 문화도 살필 수가 있습니다.
청주의 역사와 재료
청주는 맑은술이라는 뜻으로 한자 문화권인 중국, 한국, 일본에서 폭넓게 사용되어 온 개념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청탁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때 청은 청주, 탁은 탁주를 말합니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도 시에서 읊기를 “이미 듣기를 청주는 성인(聖人)에 견주고, 또 탁주는 현인(賢人)과 같다고 했네, 이미 탁주와 청주를 마셨으니, 어찌 신선되기를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이문청비성(已聞淸比聖) 복도탁여현(復道濁如賢) 성현개이음(聖賢旣已飮) 하필구신선(何必求神仙)]”라고 했습니다. 고려 시인 이규보도 백주시(白酒詩)에서 “내 옛날 벼슬 않고 떠돌 때는, 마시는 것이 오직 탁주여서, 어쩌다 청주를 만나면, 취하지 않을 수 없었네[아석랑유시(我昔浪遊時) 소음유현이(所飮惟賢耳) 시혹치성자(時或値聖者) 무내역혼치(無奈易昏醉)].”라고 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중국은 증류주 바이주가 발전하고 발효주로 황주가 명성을 얻으면서 청주의 존재는 약화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청주라는 개념이 폭넓게 사용되었지만 제법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청주와 한국 청주 사이에 혼란이 생기고, 청주 개념어가 일본 청주 중심으로 편성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흔히 흐리고 탁한 술에 견주어 맑은술을 청주라고 부릅니다. 한국 청주의 주요한 재료는 쌀, 밀누룩, 물입니다. 청주는 주로 멥쌀을 쓰지만 좀 더 감칠맛 나게 하려고 찹쌀을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조 방법은 고두밥을 쪄서 식힌 뒤 누룩과 물을 섞어 버무려서 항아리에 담아 겨울철에는 따뜻한 방안, 여름철에는 그늘진 마루에 놓아두면 스무날 정도 뒤에 술이 익습니다. 술 위에 동동 떠 있는 쌀알까지 가라앉고 나면 대오리나 싸리로 만든 용수를 박아서 맑은술을 떠낼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청주입니다. 때로 자루에 넣어서 거르거나 술을 다른 항아리로 옮겨 담는 방식으로 앙금을 제거하여 맑은 술을 얻기도 합니다.
청주는 재료에 따라 빚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주로 멥쌀과 찹쌀을 재료로 합니다. 그러나 재료의 가공 과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집니다. 가장 흔하게는 고두밥을 찝니다. 백설기를 찌기도 하고 죽을 쑤는가 하면 구멍 떡이나 물송편이나 범벅을 만들고, 때로 생쌀을 익반죽 해서 술을 담기도 합니다. 원료를 한 번에 섞어 술을 담는가 하면 밑술과 덧술로 나눠서 담기도 하고, 덧술을 두세 차례 추가하는 삼양주나 다양 주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문헌 속에 등장하는 청주들을 보면 오래 발효시켜 맑게 여과합니다. 대표하는 전통 청주로는 백일주, 삼해주, 삼오주, 경주교동법주, 진양주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백일주는 발효시키고 숙성시키는 기간이 백 일가량 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발효 기간이 길어 맛이 깊고 맑은술을 얻기에 좋습니다.
음력 정월 첫 해일에 밑술을 빚고 12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해일에 덧술을 하는 삼해주나 정월 첫 오일(午日)부터 두 번째 오일, 세 번째 오일에 걸쳐 빚는 삼오 주도 대표 청주입니다. 이런 술들은 대부분 겨울에 들어설 무렵이나 겨울에 빚어 3~4개월의 발효와 숙성 기간을 거쳐 맑게 만들어집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계승되고 있는 술 가운데 약재가 들어가지 않고 쌀과 누룩만으로 빚어지는 맑은 청주로는 경주교동법주와 해남진양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청주와 약주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 왔습니다. 대개 청주에 약재가 함유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약주라는 표현을 썼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조선시대 금주령으로 술을 단속하던 시절에 술을 약이라고 둘러대서 청주를 약주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약주와 청주 개념은 조금 다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청주는 국과 주모와 술덧의 3단으로 빚은 일본식 술을 지칭했습니다. 조선 청주는 조선 약주라고 부르면서 ‘갈색을 띠는 담황색 청주와 비슷한 투명한 것으로서 대개는 다소 혼탁되어 있으므로 일종의 방향(芳香)을 지녀, 청주보다 달콤하고 산미 또한 강하여 12~18%의 주정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구분되었습니다. 한국 청주는 갈색의 밀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황금색이 도는데 비해 일본 청주는 하얀 쌀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처럼 투명한 색깔을 띠고 한국 청주와는 맛과 향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청주 회사가 국내에 설립되었습니다. 마산의 대전정종(大典正宗), 부산의 앵정종(櫻正宗), 인천의 표정종(瓢正宗) 등의 상표가 생기면서 일본 청주 상표의 하나인 정종(正宗)이 청주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청주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조선 청주와 일본 청주를 구분하는 표식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주세법에서 약주와 청주를 달리 규정하고 있습니다.
2002년 12월 이전까지는 크게 알코올 도수로 구분하여 약주는 13도 이하, 청주는 14도 이상 제품만 낼 수 있었습니다. 2008년 2월에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는 발효제 가운데 누룩 사용 비율을 청주는 원료 사용량의 1% 미만(이전까지는 2% 미만)을 사용하도록 했고, 약주는 원료 사용량의 1% 이상(이전까지는 2% 이상)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이 규정의 근본 차이는 약주는 야생 효소나 효모의 집합체인 전통 누룩을 사용하고, 청주는 분리 추출한 효소를 쌀알에 배양한 흩임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현행 주세법에 규정하고 있는 청주는 일본 청주와 거의 비슷하고, 일제의 잔재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의 개선을 위해 일본 청주를 사케라 부르고, 청주와 약주를 구분하여 약재가 들어가지 않는 맑은술만을 청주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참고문헌
국세청기술연구소 일백년사(국세청기술연구소, 2009), 술·한국의 술 문화(이상희, 도서출판 선, 2009), 조선주조사(배상면 역, 우곡출판사, 2007), 향기로운 한식, 우리술 산책(허시명 외, 푸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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