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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속 음식이야기

겨울이 시작하면 생각나는 우리의 전통문화 김장에 대한 이야기

by 허브마스터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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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릴 적에 김장을 하면 4인가족 기준으로 100포기 정도를 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엔 겨울엔 정말 김치로 시작해서 김치로 끝을 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요즘엔 먹을 게 많아져서 그 정도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김장을 했을까? 알아보겠습니다.

 

김장하는 아버님들
김장하는 아버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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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의 정의와 역사

 

매년 11월을 전후하여 한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장만하는 일입니다.

 

김치문화는 채소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먹기 위해 소금이나 장에 절여서 보관하던 것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김치 역사 출발점은 김장과 같습니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가포육영家圃六詠>에 따르면 “무는 장을 곁들이면 여름철 석 달간 먹기 좋고得醬尤宜三夏食 소금에 절여 아홉 달 겨울을 대비한다漬鹽堪備九冬支.”라는 내용을 통해 제철 무를 저장해 두고 먹던 김장 풍속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보다 앞선 삼국시대 김장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충청북도 일대에 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에는 2000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된 석옹石甕이 있습니다. 이 석옹은 720년(성덕왕 19)에 설치되어 3,000여 명의 승려들이 겨울철 김장을 위해 사용하던 김칫독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전설과 유사한 내용이 조선시대 문인 노진盧禛(1518~1578)의 『옥계집玉溪集』에도 나옵니다. 지금은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는 덕유산 장수사長水寺에 김칫독(침채옹沈菜甕)으로 사용한 바위가 있다는 기록입니다. 장수사는 487년(소지왕 9) 신라 승려 각연覺然이 덕유산에 창건한 사찰이며, 현재는 장수사의 부속 암자이던 용추사만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남아 있습니다.

 

문집 저자인 노진은 1558년 장수사를 방문한 후 남긴 기행문에 “장수사에는 1치 깊이로 오목[凹]하게 입을 벌린 동그란 바위가 있는데 각연이 여기에 김치를 담가 먹었다고 하여 이를 김치바위[沈菜甕]라 한다.”라며 법주사 석옹의 전설과 유사한 내용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조선 후기 이래 배추로 만든 김치가 김장의 주종이 되면서 배추절임, 김칫소 준비, 버무리기 과정까지 준비가 복잡해지고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정학유丁學游(1786~1855)가 쓴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1843)의 10월령을 보면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까 깊이 묻고 박이 무우 알암말도 얼잖게 간수하소.”라고 하여 재료 수확부터 배추절임 및 퇴렴, 양념 전처리, 항아리 준비, 독 묻기까지 조선 후기 반결구성 배추가 유입된 후 많은 절차가 추가된 김장 작업 내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계절에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미리 장만해야 합니다. 봄철이면 각 가정은 새우·멸치 등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킵니다. 여름에는 2~3년 동안 저장할 천일염을 구입하여 쓴맛이 빠져나가게 합니다.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서 가루로 빻아 둡니다.

 

늦가을에 주부들은 날씨를 고려하여 김장에 알맞은 날짜를 정한다.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1759~1824)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1809)의 ‘어육김치법’에는 대구·북어·민어·조기류의 대가리와 껍질을 모아 두었다가 “서리 처음으로 내리고 날이 차 짐장할 때” 사용하라 하였고, 김장이 끝난 후 잎이 없는 무로 동지(동치미)를 담가 설 지난 뒤 먹으라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이는 김장이 준비에서 완성까지 한 해에 걸쳐 체계화해 이루어지는 작업임을 보여 줍니다.

 

 

김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

 

• 용어 변천

 

1409년(태종 9) 궁중에 고려시대 요물고料物庫와 같은 성격의 침장고沈藏庫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김장은 바로 이 침장沈藏이 팀장, 딤장을 거쳐 김장으로 변하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 “김장[沈藏][침장]の轉”이라고 정의한 것에서 통설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량의 김치를 한꺼번에 만드는 일을 ‘침장’이라고 표현한 용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순조 대의 『물명고物名考』에는 ‘장채藏菜’를 “채소의 월동을 위하여 소금절이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문집에는 동서冬菹·축채蓄菜·지축旨蓄 등을 겨울김장 김치 혹은 김장행사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조선무쌍신신식요리제법』(1924)과 『해동죽지海東竹枝』(1925)에서는 진장珍藏, 『조선요리학』(1940)에서는 진장陳藏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 노동량과 품앗이, 공동체문화

 

김장은 배추를 절였다가 씻어서 물기 빼기, 부재료인 채소와 양념을 썰거나 찧기, 젓갈과 양념에 버무려서 배추 속에 넣은 뒤 저장용기에 담기까지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김장의 양과 참여 인원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다소 다르지만 최소 이틀은 걸리는 대작업입니다. 그에 따라 가족과 이웃들이 돌아가며 일손을 거들게 됩니다. 이때 김장 노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담근 김치를 나누어 주는 것은 풍습으로 정착됐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버무려 넣는 날 돼지고기를 삶아 갓 담은 김장김치와 함께 김장에 참여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은 하나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소금이 귀한 시절에는 배추를 절인 소금물을 다음 김장을 할 집에서 물려받아 쓰기도 하였고, 바닷가 지역에서는 바닷물에 배추를 절여 김치를 담그기도 하였습니다. 배추 절이기는 가장 많은 시간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며,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음식물 쓰레기를 발생시키다 보니 뒤처리가 문제였습니다. 맛있게 만드는 노하우도 한두 번의 참여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을 통해 경험이 축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양식의 유입이나 외식산업 및 대체식품 발달, 식구 감소 등으로 김치 소비량이 줄다 보니 김장양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김치 제조 노하우 부족, 노동 참여자 부족, 체험과의 병행 욕구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김장 풍속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재는 김치 브랜드 상품을 사 먹거나 절임배추만을 구입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김장을 체험관광 상품으로 즐기면서 김장도 해결하는 추세가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노동량을 감당하기 위해 김장품앗이문화가 생겨나는 등 급속히 개인화·도시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김장문화가 지속되기 어려운 요인이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가 빠져나간 농촌에서는 가족단위가 아닌 마을 단위 김장을 하게 되고, 도시에서는 이웃이 아니라 멀리 살더라도 식구들만 모여 김장을 해서 나눕니다. 김장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던 이웃의 소통, 레시피의 전승과 교환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 김장 날짜

 

서리가 내리기 전 배추와 무를 거두고 땅이 얼어붙기 전에 김장독을 묻어야 하는데 김장 날짜를 잘못 잡아 자칫 기온이 높다 싶으면 김치가 빨리 시어지기 때문에 적정 시기를 찾는 것이 큰 걱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통시대에는 입동을 전후하여 담그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근대화로 인해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고 급여 노동자가 늘다 보니 김장 원료를 구매하기 위한 김장공설 시장이 개설되고, 월급으로 재료 구매 비용을 충당하게 되면서 김장 시기가 회사의 월급날이나 김장보너스 지급일에 맞춰지기도 하였습니다.

 

김치를 담가 시원하고 안정된 조건에서 저장하여 최고 맛을 얻으려면 적절한 온도가 중요합니다. 김장 담그는 시기가 외기 온도에 따라 지역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보니 김장 일기예보가 제공되는 독특한 문화 현상도 생겨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재료 구입이나 외기 온도에 과거처럼 크게 구애를 받지는 않게 되면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날짜에 맞추어 김장 날을 잡기도 합니다. 분가한 자녀들이 김장에 참여하기 위해 본가로 이동하느라 김장 시즌에 교통량이 증가하기도 하고, 김장김치를 택배로 보내주는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김장철 택배 특수가 명절에 버금가는 새로운 현상이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원료 수급과 완성 김치의 보관성 문제로 김장 시기가 제한됐기 때문에 김장을 하기 전에 김치가 떨어졌을 경우 김장김치를 담글 때까지 먹을 수 있도록 미리 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때 담는 김치를 지레김치라 합니다. 설 전에 먹을 김치는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으므로 양념 양도 많고 굴, 생새우, 낙지 등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을 넣어 담급니다. 설 이후에 헐어서 먹을 김치는 늦김치라 하여 양념 양을 조금만 하고, 다소 간을 짜게 해서 오래 두고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도록 구분하여 만들었습니다.

 

• 보관과 저장

 

지역에 따라 김치광처럼 별도의 공간에 보관하는 곳, 땅에 묻는 곳, 묻은 뒤 김치움을 짓는 곳도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주거 형태가 아파트 문화로 바뀌면서 김치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게 되자 스티로폼으로 항아리를 둘러싸 보관하기도 하였습니다. 국내 가전회사에서 김장독 원리에 착안한 김치 전용 냉장고 개발에 성공하여 크게 보급됨으로써 많은 양의 김치를 보관하지 못해 사라질 뻔한 김장 문화가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땅속에 묻은 김장독의 저장 원리를 응용한 김치냉장고는 냉장 보관 효과가 높아 김치 외 다양한 부식물을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다는 쓰임새를 인정받으면서 점차 필수 가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선정과 국가무형유산 등재 의의

 

2013년 12월 ‘김치와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선정되었고, 2017년 11월 15일 ‘김치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김치 담그기가 지역·사회·경제 차이를 넘어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가족의 일상 속에서 여러 세대에 전승되며 반복해서 행해지고 있는 생활관습이라는 점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지역마다 다른 자연 재료를 창의로 이용해 공동으로 만드는 행위를 통해 가족 간 협력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체감하게 됩니다. 도시화, 서구화, 상업화 시대에도 한국인들이 가정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거나 친척들이 정기 제공을 해 주는 김치를 먹고 있다는 점은 김장이 현대사회에서 가족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과거 김장공동체끼리 김치를 나누던 미풍을 살려 오늘날에는 김장철마다 지역사회, 자원봉사 단체, 기타 집단이 참여하는 대규모 김장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담근 김치는 사회 약자층에게 기증됩니다. 이러한 행사는 확장된 형태의 김장공동체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2015년에는 북한의 김장문화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김치가 분단된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음식문화라는 점을 복기시켜 주었습니다.

 

 

지역 사례

 

김장은 배추김치, 무김치, 물김치를 한 종씩 담그는 것이 기본입니다. 먹을 시기와 용도에 따라 김치 유형을 달리하여 담그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때 배추김치로 통김치, 보쌈김치와 함께 썰어 담근 막김치나 섞박지 같은 것이 가감되기도 합니다. 무김치는 크기, 양념 정도, 무 품종에 따라 통무김치 ·총각김치·깍두기 등을 담급니다. 물김치는 동치미가 대표적입니다. 배추를 이용해 백김치를 담그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지역이나 집안 내력에 따라 김치 종류와 양념 및 담금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겨울에 기온이 높고 채소를 구하기 어렵지 않은 제주도 지역의 경우 김장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음력정월에 밭에 남겨 둔 연한 배추꽃대인 동지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멸치젓, 마늘, 고춧가루로만 담근 동지김치가 이 지역 대표 겨울김치입니다. 결구가 되지 않아 잎이 퍼진 퍼데기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대신 바닷물에 사흘 동안 담가 두었다가 퍼데기김치로 담가 먹었다고 합니다.

 

 

김장의 특징과 의의

 

김장은 농경문화 전통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21세기 고도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의 세태에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김장을 실내에서 하는 가정이 많아져서 추운 날씨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재료가 냉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것은 산지·유통업체의 몫이므로 김장 날짜를 정하는 데 제약 요인은 날씨와 작황이 아니라 오히려 김장에 동원 가능한 가족 구성원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가 되었습니다. 부모·친척으로부터 김장김치를 공수해 와야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 보니 제사나 명절보다 실리 위주 가족행사가 된 셈입니다.

 

김장 범위가 가족 단위에서 벗어나 확장되는 경향도 점차 생겨나고 있습니다.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는 사람도 회사의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며, 담그는 방법을 모르거나 재료 준비가 어려운 가정에서는 인근 지역에서 개최되는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해 배워 가며 김장을 담그기도 합니다. 여러 대안이 많아진 만큼 김장 담그기가 주는 스트레스 형태는 조금 변화하였을 것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며, 김장 담그기가 주는 기쁨도 그 강도와 내용은 변화하였을 것이지만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김치 소비량이 줄면서 김장 양도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된장, 간장, 고추장에 비해 김치의 자가 제조율이 높은 이유는 아직까지 집안의 가장과 주부들이 집집마다 모두 다른 ‘엄마 김치’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단체급식을 통해 표준화된 상품김치를 접해 온 다음 세대들이 성인이 될 경우 김장문화는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규합총서(閨閤叢書), 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세계김치연구소, 2013), 김치-한민족의 흥과 한(세계김치연구소, 2016), 조선시대 김치의 탄생(박채린, 민속원, 2013), 한국민속대백과사전(folkency.nf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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