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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속 음식이야기

만두피가 없는 누드만두 - "굴린 만두" 이야기

by 허브마스터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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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린 만두는 만두피를 만들지 않고 만두소만으로 완자 형태로 빚어서 녹말가루에 여러 번 굴려 막을 형성시킨 다음 장국에 넣어 끓여낸 만두로 서울의 향토 음식입니다. 서울에는 궁중 만두였던 준치만두가 만드는 방법에서 굴린 만두였고, 지방에서는 명태살과 오징어를 다져 만든 강릉의 굴린 만두,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한 평양의 굴린 만두 등이 있습니다.

 

굴린 만두
굴린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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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린만두란?

 

조선시대에는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누드만두’ 가 있었습니다. 즉 만두피가 없는 만두를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누드 김밥은 사실상 밥과 김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므로 만두피가 아예 없는 누드만두는 더욱 파격적입니다.

 

그러한 만두의 이름은 바로 ‘굴린 만두’ 입니다. 명칭 에서조차 어떠한 만두인지 알쏭달쏭하면서도 흥미로운 이름입니다. 굴린 만두는 ‘굴리다' 라는 동사의 활용형인 ‘굴린’ 과 만두가 합쳐진 명칭입니다. 만드는 방법 또한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굴린 만두는 돼지고기 또는 소고기를 섞은 돼지고기를 다져서 양념을 한 후 만두소를 완자와 같이 빚어서 밀가루나 녹말가루에 여러 번 굴려 막을 입힌 다음 장국에 끓여 그대로 만두탕으로 먹거나 건져내어 양념장에 먹는 음식 입니다.

 

굴린 만두를 넣은 탕
굴린 만두를 넣은 탕

 

굴린 만두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 완자의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완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소고기나 두부 등을 다져서 모양을 만들고 녹말가루와 달걀물을 씌워 기름에 지진 음식인 완자는 저냐 혹은 전유화(煎油花)로 불렸던 전(煎)류에 속하는 음식으로 만두와는 다릅니다. 비록 만두피와 같은 껍데기가 없어도 굴린 만두가 만두에 속하는 것은 만두소가 익히는 과정에서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점성이 높은 녹말가루를 여러 번에 걸쳐 얇으면서도 치밀하게 도포해 주기 때문입니다. 

 

 

굴린 만두가 생긴 이유

 

굴린 만두와 같이 만두피가 없는 만두가 생기게 된 연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정됩니다. 우선 옛날에는 만두피의 재료인 밀가루가 매우 귀한 식재료였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기온이 습하고 높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쌀농사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반면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밀농사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23년(인종 1) 북송(北宋)의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이 고려의 풍속을 기록으로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 잡속편(雜俗篇)에는 “나라(고려) 안에는 밀이 적어 모든 상인들이 산동성(山東省) 일대에서 온 것을 판다. 그러므로 밀가룻값이 매우 비싸서 성대한 예식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國中少麥 皆賈人販自京東道來 故麵價頗貴 非盛禮不用)”고 한 데서 오래전부터 밀가루가 귀한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밀가루는 ‘진짜가루’ 라는 뜻을 가진 ‘진가루(眞末)’로 불렸고, 일반적으로 메밀가루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전통조리서를 살펴봐도 만두를 비롯하여 국수 등 음식의 주된 재료는 거의 메밀가루를 사용하거나 그 다음으로 녹두가루 등이 이용되었습니다.

 

현재 고문헌 가운데 밀가루를 뜻하는 한자인 ‘면(麵)’이 그냥 밀가루로 해석되어 통용되지만 옛날에는 특별한 언급이나 단서가 없는 한 메밀가루를 지칭하는 것이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굴린 만두가 생긴 연유 중 다른 하나는 밀가루로 만든 만두피의 식감과 섭취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밀가루가 귀하기도 하였지만 밀가루로 만든 만두피는 조리하는 과정에서 수분을 흡수하면 부풀게 되고 텁텁하여 자칫 만두의 식감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이나 예나 밀가루에 함유되어 있는 글루텐 성분이 체질에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소화장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물론 반드시 이러한 요인으로 굴린 만두와 같은 음식이 생겼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건강과 맛, 경제성까지 고려한 조상들의 복합적인 배려가 반영된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다양한 종류가 있다

 

굴린 만두는 지역과 장소, 재료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조선의 궁중만두 가운데 굴린 만두가 있습니다. 1270년(원종 11) 무신정권이 종식되고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고려에 ‘쌍화(雙花)’라는 이름의 만두가 전래된 이래 만두는 궁중음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궁중만두 가운데 숭어나 민어 등 생선을 이용한 어만두(魚饅頭)가 있는데, 그 중에서 준치만두는 ‘썩어도 준치’ 라는 속담처럼 너무 맛이 좋아 진어(眞魚)로도 불렸던 준치라는 바닷물고기로 만든 만두입니다. 재료로 보면 어만두에 속하지만 만드는 방법에서는 굴린 만두에 가깝습니다.

 

어만두는 얇게 포를 뜬 생선살을 만두피로 사용하지만, 준치만두는 준치를 쪄서 가시를 발라내고 양념하여 완자처럼 빚은 소에 녹말가루를 입히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준치만두는 차츰 민간에 전해져 반가(班家)에서도 만들었는데 궁중의 것보다 더 화려해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19세기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쪄낸 준치살과 볶은 소고기에 양념을 하여 완자 형태로 빚은 소에 잣을 하나씩 박아 녹말가루에 굴려 찐다” 라고 준치만두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굴린 만두는 여러 지방의 향토음식으로도 전승되었습니다. 1880년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방문』이라는 조리서는 경기지방의 전통음식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입니다.

 

『음식방문』에는 두 가지의 굴린 만두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준치 만두이고, 다른 하나는 ‘석화만두(굴만두)’이다. 껍질을 까서 물기를 뺀 생굴을 간장에 담갔다가 소쿠리에 건져 간장물을 뺀 다음 메밀가루에 굴려서 끓는 물에 익힌 후 건져내어 간장 · 식초 · 설탕 · 다진 마늘 · 다진 파 · 다진 생강 · 후춧가루를 섞어 만든 장에 찍어 먹는 음식입니다.

 

 

굴린 만두의 역사와 특징

 

굴린 만두는 오래전부터 평안도지방의 향토음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평안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예로부터 중국의 사신의 행차와 사행(使行)의 통로였으며,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조선시대 최대 상단(商團) 중 하나였던 만상(灣商)의 활동무대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평안도는 다른 지역보다도 중국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으로서 만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습니다. 평안도의 굴린 만두는 추운 지방 답게 고지방 고단백 식재료인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에 물기를 짠 두부, 숙주, 배추김치를 섞어 양념을 한 다음 다져서 완자 모양으로 빚은 것을 밀가루에 굴려 소고기 육수에 끓여 먹는 음식입니다.

 

해산물이 많이 나는 강원도 주문진 지방에서는 명태살과 오징어를 다진 다음 쪽파와 표고버섯 다진 것을 섞어서 양념하여 동글게 만들어서 밀가루에 굴린 다음 계란물을 입혀 조개육수에 넣고 끓인 굴린 만두가 향토음식으로 전합니다.

 

현존하는 만두를 소개한 옛 문헌 중에 1449년의 『산가요록(山家要錄)』으로부터 1957년의『이조궁중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에 이르기까지 전통조리서에 실린 만두 종류는 대략 78가지에 이릅니다.

 

만두피의 재료만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경우는 대개 밀가루 같은 곡물재료를 만두피로 사용합니다. 그 반면에 우리나라는 곡물가루 · 생선살 · 육류 · 조류 · 채소 · 김치 등 다양한 식재료를 만두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만두문화의 독창성과 발달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아예 만두피를 제거하고 만두소에 녹말가루를 입혀서 익힌 굴린 만두는 그야말로 만두에 대한 통념을 깬 만두음식의 백미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자료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식생활사전 식생활①.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18.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15: 향토음식 편. 서울: 형설출판사, 1984. 추영미. 조선시대 고조리서에 나타난 어류 조리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 석사학위, 숙명여자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2018. 백두현. "조선시대 한글 음식 조리서로 본 전통 음식 조리법의 비교-만두법" 한 맛 한 얼 제2권 제2호. 한국식품연구원, 2009. KBS 한국인의 밥상, “152회 속 깊은 그 맛 - 만두”, 한국방송공사, 2013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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