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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요리/한국의 전통음식

팥죽과 칼국수의 환상적인 콜라보, 전라북도 팥칼국수

by 허브마스터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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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칼국수는 팥물을 끓여 만든 앙금에 밀가루 또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한 칼국수를 넣고 끓여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싱건지, 묵은 김치 등과 함께 먹는 전라북도 지역의 향토음식입니다.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웠던 시절의 허기를 달래주는 식사였지만 현재는 영양식 또는 별미로 찾는 음식입니다.

 

팥죽과 칼국수의 환상적인 궁합 "팥칼국수"
팥죽과 칼국수의 환상적인 궁합 "팥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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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과 칼국수의 역사

 

팥칼국수는 이름에서도 짐작되듯이 팥죽과 비슷한 팥 국물에 칼국수의 면을 넣어 익힌 전라북도의 향토음식입니다.

 

그런데 팥칼국수라고 하면 왠지 추운 날씨나 겨울에 먹어야 제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팥칼국수와 관련된 음식인 팥죽은 대대로 12월 동지(冬至)에 먹는 절식(節食)이었고, 칼국수도 뜨거운 장국에 끓여 내기 때문에 더운 여름보다는 추운 겨울에 더 어울려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고문헌을 들여다보면 팥죽과 칼국수가 더운 여름철의 피서음식이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철종(哲宗) 때 좌의정을 지낸 박영원(朴永元, 1791~1854)의 『시곤록(示昆錄)』에 의하면 정월 초하루와 대보름, 삼짇날, 유두, 중양절, 동지 등을 조선시대의 6대 명절이라 하였는데, 해당 명절에는 차례상에 시식(時食)을 올렸습니다. 

 

그중 6월 15일에 지내는 유두(流頭) 제사에는 수단(水團)을 올린다고 하였다(正朝 上元 三月三日 六月望日 九月九日 冬至六節日 以殷奠行茶禮 … 流頭之水團 … 從時食也). 수단은 쌀가루나 밀가루를 경단으로 빚어 꿀물이나 오미자물에 넣어 먹는 우리 전통음료의 한 종류로 유두날의 절식(節食)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두 무렵은 밀 수확이 끝난 시기이므로 수단 외에도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많이 해 먹었습니다. 

 

홍석모(洪錫謨)가 저술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유두날에는 지금의 찐빵에 해당하는 상화병(霜花餠)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복달임음식으로 팥칼국수를 해먹었는데, 이는 삼복더위에 먹는 ‘복죽(伏粥)’이라고도 불리던 팥죽을 먹는 습성에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 역사와 유래는 고려 말의 문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두죽(豆粥)’이라는 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팥을 삶아 쑨 죽의 붉은 빛이 짙은데, 가을이 왔어도 날은 여전히 무덥고 바람 한 점 없이 쪼이는 햇볕에 온몸의 열기를 식혀 주고 기운을 통하게 해주는 것이 맛도 석청보다 더 달콤하다(小豆烹爲粥 光浮赤面濃 秋回天尙暑 日照晝無風 淨掃三焦熱 淸凝九竅通 微甘生齒頰 崖蜜謝黃蜂)"


한방에서 팥은 성질이 차가운 곡물로 해열효과가 커서 열을 내리는 약재나 음식재료로 많이 쓰였던 점에 미루어 보면, 팥죽은 아주 오래전부터 무더위에 지친 몸을 식혀주고 원기를 북돋아 주는 음식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과는 달리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한 음식재료여서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팥칼국수는 근현대시기에 들어와서 서민들의 음식으로 대중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밀은 비가 많은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경작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보리보다 성장속도가 느려 초여름에 추수하기 때문에 쌀과 이모작을 할 수 없었고, 쌀보다 면적당 생산량이 훨씬 떨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결정적으로 밀 재배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온 북송(北宋)의 서긍(徐兢)이 고려의 문물과 풍속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나라(고려) 안에 밀이 적어 상인들이 모두 송나라 수도의 동쪽 지방[京東道]에서 사 온다. 그러므로 면(麵) 값이 매우 비싸서 큰 의식[盛禮]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國中少麥 皆賈人販自京東道來 故麵價頗貴 非盛禮不用)”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밀가루와 밀가루로 만든 면이 귀한 식재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절면(切麵) 또는 도면(刀糆)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칼국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로서 안동장씨(安東張氏) 부인이 1670년경 저술한 『음식디미방』에 제면법과 조리법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밀가루가 귀하였기 때문에 『음식디미방』에서도 면의 재료는 대체로 메밀, 녹두, 칡 등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

 

 

밀가루 음식의 대중화

 

우리나라에서 칼국수를 비롯한 분식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저렴한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입니다.

 

1950년대는 해마다 보릿고개가 존재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전쟁 이후 식량사정은 극도로 악화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무상으로 원조한 밀가루가 1960년대 말까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우리 음식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전통시대에는 잔칫집에서나 얻어먹을 수 있었던 국수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대중적인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전통적인 맛의 부안군 팥칼국수와 함께하는 동치미와 묵은 김치

 

팥칼국수는 팥물을 끓인 후 가라앉은 앙금에 밀가루나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만든 면을 넣고 끓여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하여 만듭니다.

 

팥칼국수를 먹을 때 전라도 방언으로 ‘싱건지’라 불리는 동치미와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합니다.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부안군의 팥칼국수가 유명하였습니다. 지금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위치한 부안상설시장과 주변 동중리에는 팥칼국수로 유명한 맛집들이 모여 있어 진한 팥 국물에서 제대로 우러난 팥칼국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팥죽을 먹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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