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임금님 들은 나라의 가장 비싸고 좋은 음식만 드셨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곧 손이 많이 가고 구하기 힘든 음식을 주로 드셨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구절판도 각가지 재료에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요리입니다. 근래에는 고급 한정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입니다. 알아보러 가겠습니다.
구절판의 정의
구절판에 둘레 여덟 칸에 채소·버섯·고기·전복·해삼·계란 등 익힌 것을 담고, 가운데 칸에 담은 밀전병으로 싸서 먹는 음식입니다.
구절판은 우리 고유의 오방색(五方色)인 노란색·붉은색·녹색·흰색·검은색을 고루 갖춘 대표 음식으로, 가장 화려한 모양의 음식입니다.
‘구절판九折坂’은 팔각으로 된 나무 그릇으로, 가운데에 작은 팔모의 틀이 있어서 칸이 모두 아홉 칸으로 나뉩니다. 보통 옻칠을 하고, 뚜껑이나 옆면에 자개를 박거나 조각을 하여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우리나라 식기는 도자기, 옹기, 유기, 은기가 대부분인 가운데 구절판은 목기로 만들었습니다. 구(九)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숫자로, 완전한 이상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부터 구(九) 자를 재수가 좋은 숫자로 여겼습니다. 구중천(九重天)은 우주를 뜻하며, 경(京)을 중심으로 8도로 나눈 것도 이러한 뜻입니다.
구절판의 역사와 설명
구절판은 조선 후기 문헌에 처음 나옵니다. 중국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구절판과 비슷한 칠기가 있으나 크기가 훨씬 크고, 춘병(春餠)이라는 밀전병에 싸 먹는 음식을 담을 때 쓰입니다.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을 오가면서 먹어보고 우리나라에 와서 개발한 것은 아닌가 추측됩니다. 근래에는 구절판 목기 대신에 은기, 유기 또는 도자기로 만든 것들도 있고, 칸이 없는 큰 접시에 담기도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궁중이나 반가(班家)에서 유월 유두의 시식으로 밀쌈을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절판 그릇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구절판은 궁중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궁중잔치 기록인 『진찬의궤進饌儀軌』나 『진연의궤進宴儀軌』에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구절판이 문헌에 나오는 것은 1900년대 들어서입니다.
구절판에 밀전병을 놓고 가장자리에 찬을 담은 것은 진구절, 마른안주를 담은 것은 건구절판이라 합니다. 여러 가지 육포와 새우포, 어포, 어란 등을 구절판 둘레 칸에 담고 가운데 칸에 생률을 담아 주안상에 내기도 하였습니다.
구절판에 담는 재료는 세월에 따라 약간씩 달라졌습니다. 『조선요리법』(1939)에는 메밀가루로 전병을 부쳤고, 가장자리에는 양·처녑·콩팥·무·숙주·미나리·표고·석이의 여덟 가지 재료를 각각 볶아서 담았습니다. 『조선요리학』(1940)에 구절판은 밀가루로 전병을 부치고, 쇠고기와 소양·미나리·표고·숙주·무나물·황백지단의 여덟 가지를 담았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가사과 실습용 교재인 『조선요리대략』(1950)은 구절판을 술안주로 분류하고, 내용도 지금과 아주 다릅니다. 가운데에 담는 전병은 밀가루나 메밀가루, 찹쌀가루로 얇게 부쳐서 보시기를 대고 둥글게 오려서 담는다고 하였습니다. 가장자리에는 애호박나물, 표고 또는 목이, 석이, 제육편육, 당근나물, 숙주나물 또는 미나리나물, 황백 달걀지단을 채 썰어 담고 따로 초장을 곁들였습니다. 여기서는 육류로 제육편육만 넣었습니다. 이후에 나온 『이조궁정요리통고』(1957)의 구절판에는 쇠고기·처녑·전복·당근·표고·석이·애호박·계란을 넣었고, 밀가루로 전병을 만들고 겨자장을 곁들였습니다.
구절판의 특징
구절판은 원래 나무에 옻칠을 하고 윗면에 화려하게 자개로 장식한 목기지만 지금은 그릇보다 담긴 음식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구절판은 그릇도 호화롭고 담긴 음식의 색이 고와서 교자상이나 주안상을 아름답게 하고, 맛이 담백하여 전채 음식으로 적합하였습니다. 구절판의 원래 음식은 밀쌈이며, 가장자리 여덟 칸에는 고기와 전복·해삼·채소·버섯 등을 각각 채 썰어 익힌 것과 황백지단 채를 담습니다. 익힌 채소인 숙채와 고기, 해물, 지단을 밀전병으로 싸서 겨자집과 초장을 찍어 먹는 음식입니다.
구절판에 담은 재료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향기가 강한 풋고추, 피망, 셀러리, 우엉 등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해물 중에는 새우, 게, 오징어 등을 데쳐서 넣으면 색도 곱고 맛도 어울립니다. 재료를 모두 가늘게 채 썰어서 준비합니다. 쇠고기는 간장으로 양념하고 나머지 채소는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이때 파, 마늘 양념을 조금씩만 넣어서 색과 향을 잘 살려 볶습니다. 구절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전병으로 얇게 부쳐야 하며, 두꺼우면 맛이 없습니다.
참고문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음식 백가지2(한복진, 현암사, 1998), 이조궁정요리통고(한희순·황혜성, 학총사, 1957), 조선요리대략(황혜성, 1950), 조선요리법(조자호, 광한서림, 1939), 조선요리학(홍선표, 조광사,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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